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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퇴고, 다시 퇴고"의 련마작업을 거치는 고된 작업...
2017년 01월 14일 17시 09분  조회:2792  추천:0  작성자: 죽림

퇴고와 관련, 이우걸 시인의 고백을 들어보기로 하자. 



● 외우면서 퇴고하기 / 이우걸 

<1> 
내게도 비밀한 나만의 시조작법이 있다. 그것은 외우기이다. 시조에 접하게 된 계기도 외우는 과정에서 이루어졌고, 좋은 시조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도 외우면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외우는 것이 어떤 면에서 좋은 방법이 되는가. 또, 외우면서 무엇을 고치는가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 2> 
나는 초 중학교 시절에 늘 어머니를 위해 고시조를 붓글씨로 써야 했다. 어머니는 그걸 외우시는 것이 당신의 낙이었다. 그 낙은 마치 옛 여인들이 기구한 그들의 한을 노래에 실어 물레를 잣듯 시간을 자아가며 살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고시조 두루말이는 그 당시 우리 집에선 어머니의 교과서로 여러 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 교과서를 외우시는 어머니 곁에서 우리 식구들은 혹시 어느 구절이 틀리나 하고 듣고 있었지만 틀리시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이제 나 스스로도 시조를 외는 버릇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시조를 자꾸 외우다 보면 3장 12음보의 형식미를 자연스레 알게 될 뿐 아니라 그 작품이 그려보이는 정경까지도 상상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시조를 쓰는 시인이 되었다. 어쩌면, 어머니의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시조감상 방법대로 지금은 내 시조를 감상하는 것이다. 그 감상 과정에서 문제점이 생기면 손질을 다시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나의 퇴고 방법이다. 그렇다면 내가 발견할 수 있는 문제점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얘기해야 할 순서가 된 것 같다. 

첫째로는 형식에 대한 점검이다. 시조는 두루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정형시다. 특히, 자수로 해결되지 않는 운율의 미학을 시조는 지니고 있다. 따라서 자수는 맞으나 시조가 아닌 작품이 있는가 하면 자수로는 넘쳐나는 듯한 데도 시조의 형식미를 잘 갖춘 시조가 있다. 이에 대한 감식안은 시조를 많이 외운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비법이 아닌 비법이다. 

두번째로는 동원된 언어에 대한 점검이다. 가령, 격을 낮춘 비어를 발견했을 때 이 비어를 동원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에 대해 심사숙고하게 된다. 또 모음의 지나친 반복이나 받침 사용의 문제점, 동어반복의 문제점 등을 따지는 것이다. 지나치게 율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 가벼운 서정시로서는 장점이 될 것이고 무거운 서정시의 경우는 단점이 될 것이다. 또 모음의 반복이 리듬감을 살리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지루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받침의 경우 발랄한 서정시의 분위기를 필요로 할 때는 어휘를 바꿀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세번째로는 내용에 대한 점검이다. 여기에서 특히 유의해야 할 것은 구조의 완결성이다. 시조는 초, 중, 종장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어떤 방법으로든 시적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초, 중, 종장은 서로 관계해야 한다. 또, 연시조의 경우 첫 수와 둘째 수 혹은 샛째 수는 독립해 있으면서도 서로 한 시세계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서로 관계없는 연시조라면 함께 묶어 같은 제목을 붙일 이유가 없다. 



< 3> 
이제 나의 시조 쓰기 방법을 보이기 위해 몇 편의 작품을 들어보고 싶다. 

어릴 때 누나는 창녕에서 자랐고 
자라서 누나는 파주에서 살지만 
당신은 우리 누나를 욕하지 못한다. 

강도 산도 해도 달도 산 자의 인연일 뿐 
핏줄처럼 엉켜붙은 잡초들을 후벼파다가 
사변이 나던 이듬해 밤차를 타고 떠났다. 

이따금 엽서에다 누나는 소식을 쓴다 
성한 그, 다리로는 밟지 못할 고향땅에 
어머니 추우실까 봐 털옷도 짜 보낸다. 

‘우리 누나 - 6·25' 

유월 어느 날이었다. 반공 구호가 신문이나 방송 채널에서 계속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신문이나 TV 채널의 도식적이고 의례적인 행사에 식상해서 몸서리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시인인 나는 6·25를 어떻게 노래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내용을 시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글을 써 본 사람이면 경험하곤 하지만 정말 막막했다. 그 때 얼른 머리 속을 스쳐 가는 상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릴 때 아랫동네 한 처녀에 관한 것이었다. 

즉, 그 처녀는 6·25 이후 너무 가난해서 거리의 여인이 되어 파주에 살고 있는데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엔 고향 땅 발 못 디딘다."고 외치던 그 처녀 아버지가 죽은 이듬해에 노랑머리 남자 아이와 얼굴이 검은 아이를 데리고 몰래 밤에 고향에 왔다가 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6·25의 참상 중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가장 아픈 사건은 바로 죄 없는 이 처녀의 인생사다. 따라서, 실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우리 누나'의 일로 바꾸어 써 본 것이다. 처음엔 제목을 ‘6·25'로 했다가 다시 '편지'로 했다가 최종적으로 '우리 누나'로 바꾸었다. 

나는 그대 이름을 새라고 적지 않는다 
나는 그대 이름을 별이라고 적지 않는다 
깊숙이 닿는 여운을 
마침표로 지워버리며. 

새는 날아서 하늘에 닿을 수 있고 
무성한 별들은 어둠 속에서 빛날 테지만 
실로폰 소리를 내는 
가을날의 기인 편지. 

- ‘비’ 

어느 가을날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나는 어떤 사람에게 열심히 사랑의 편지를 썼다. 그러나, 한번도 부치지는 못했다. 그 때 내가 하숙한 집은 일본식 가옥이었다. 그 지붕 끝에 양철 물받침이 있었다. 그래서 물이 떨어지면 실로폰 소리 같은 게 났다. 
대학 2학년 어느 가을날, 나는 다시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위의 시조를 썼다. 비상과 하강의 이미지 배치, 그리고 사랑의 감정 - 어쩌면 가을에 내가 만난 비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썼던 완성되지 못한 편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 작품은 씌어진 것이다. 제목도 ‘편지', ’가을 비', ‘비'를 두고 많은 시간을 보낸 뒤 ’비'로 정했다. 고심한 덕분으로 이 작품이 중앙시조대상 신인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 4> 
이제 다시 좋은 시조를 쓰는 방법으로 돌아가서 얘기해 보자. 나는 그 비법으로 외우기를 들었다. 그렇다. 시조는 특히 외우면서 퇴고해야 한다. 퇴고 기간은 길게 잡을수록 좋다. 어떤 작품의 경우는 창작할 때부터 수작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많은 모순을 안고 태어난다. 그 모순은 퇴고라는 작자의 애프터 서비스를 통해 말끔히 지워지게 된다. 어제까지 몰랐던 작품의 문제점을 오늘 다시 발견하고 그 문제점을 잘 고치면서 느끼는 희열 또한 작은 것이 아니다. 과작이라도 좋다. 시인은 완결된 한편의 작품을 묘비명에 새기기 위해 생애를 투자하는 사람이 아닌가! 


외우면서 퇴고한다는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시조시인 백수 정완영(鄭椀永) 선생 같은 분은 시상(詩想)의 발상에서부터 탈고(脫稿)까지 전과정을 머릿속에서 외우면서 처리한다고 한다. 그 시조에 걸맞는 시어(詩語)를 취사선택하고 이미지를 풀어내는 언어의 조립, 짜집기, 군더더기 제거, 결구 작업 등 모든 창작 공정을 머릿속에서 처리한다고 한다. 컴퓨터 두뇌처럼 머릿속에서 정리·정돈한 글을 원고용지에 옮겨 적는 정서 작업을 끝내면 한 편의 완결된 시조가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완영 선생은 ‘컴퓨터 두뇌'로, 당신이 창작한 모든 시조를 줄줄 외운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창작한 모든 작품을 줄줄 외운다고 하여 천재시인이나 ‘위대한 문인'으로 추앙받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컴퓨터 두뇌 백수 선생 한 분에게만 해당되는 일일 것이다. 

중국 당나라 중엽의 시인 이백(李白 자 太白)은 천성이 호방하고 술을 좋아한 나머지 흥이 나면 곧 시를 창작하는 천재 시인이었다. 술 한 잔에 시 한 수씩을 읊었다고 하니 천재는 천재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태백이 놀았던 당나라 때와 오늘의 21세기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백낙천과 방석에 얽힌 에피소드나, ‘노인과 바다'를 200번이나 고쳐 쓴 헤밍웨이의 이야기, 그리고 작가 이외수, 시조시인 이우걸의 창작 비결(秘訣)은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시나 시조를 포함하여 모든 문학작품을 창작한다는 일은 입에 단내가 나도록 고치고 또 고치는 퇴고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도 된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자기가 구상하고 있는 시조의 미진한 대목을 수정하고, 보완하고, 꿈속에서도 시조와 씨름하는 절차탁마의 노력 없이는 훌륭한 문학작품을 얻어내기란 지극히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퇴고, 다시 퇴고를!’ 이 말을 늘 염두에 두고 작업에 매달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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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에서 온 편지 
―이지엽(1958∼ )

아홉배미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꾹꾹 쑤신다

아가 서울 가는 인편에 쌀 쪼간 부친다 비민하것냐만 그래도 잘 챙겨묵거라 아이엠 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 하고 지난 설에도 안 와브럿다 애비가 알믄 배락을 칠 것인디 그 냥반 까무잡잡하던 낯짝도 인자는 가뭇가뭇하다 나도 얼릉 따라 나서야 것는디 모진 것이 목숨이라 이도저도 못하고 안 그냐.

쑥 한 바구리 캐와 따듬다 말고 쏘주 한잔 혔다 지랄놈의 농사는 지먼 뭣하냐 그래도 자석들한테 팥이랑 돈부, 깨,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 너할코 종신서원이라니… 그것은 하느님하고 갤혼하는 것이라는디… 더 살기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더러 보고 자파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똥마냥 니 생각 끈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종이에 꾹꾹 눌러 쓴 낯익은 글씨에 벌써 딸은 와락 그리움이 치밀 테다. 어머니만의 말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편지에 어머니의 모습과 목소리가 아른거리리. 삭신은 꾹꾹 쑤시고 마음은 질컥거리고, 그래서 사는 게 팍팍하단다. 하나 있는 아들이 ‘지난 설에도 안 와브럿다’고 딸에게 일러바치며, 그리움과 외로움과 서운함을 알뜰히 전하신다. 딸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각별하신 듯하다. 그만큼 살갑고 미더운 딸이 수녀 종신서원을 했으니, 알지 못할 세계로 가버린 듯 가슴이 휑하실 테다. 보고자파라, 내 딸! 편지로 미루어 시원시원한 성격인 어머니시지만 눈 밑 주름 고랑을 타고 ‘달구똥(닭똥)’ 같은 눈물이 흐르셨을 테다. 그 마음 감추고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라신다. 아, 그리운 어머니, 그리운 복사꽃!

곡식을 거둘 때도 자식 생각, 복사꽃이 피어도 자식 생각. 아름다운 것, 좋은 것이 생기면 주고 싶은 마음이 사랑일래라. 길지 않은 시에 홀로 농촌을 지키는 노인이며 한 집안의 서사가 담겨 있다. 구어체 편지 형식의 맛깔스러운 사투리가 시를 생생히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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